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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밥다반사/서툴러도 괜찮아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때




사람들을 늘 도전하라고 한다.   

도전한다는 것은 맨손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다고 한다. 

두 손으로 일을 되도록하는 조짐을 꾀하는 일이라고도 한다.

 헌데 이 도전이란 두 글자를 강조하다 못해 강요하는 사회가 되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늘 도전하라는 말은, 새로운 것에만 눈을 돌리고 시도했음에만 의의를 두고 자위하는 일을 합당하게 만든다. 청년들에게 늘 도전하라고하고, 누군가를 나서지 못했음을 자책하게 만드는 일. 시작하고 일의 완성보다 시도에 의의를 두는일이 다반사이다.

지엽적이다. 일은 늘 양면성을 같는다. 강요로 혹은 시스템의 부잴 한 점만 바라 보게 만드는 도전이란 글자도 그렇다. 


삶은 영원하지도 또 그리 짧은 것도 아니다. 하루 하루를 도전하는 일. 참 멋스러운 말이다. 하지만 새해를 열흘 보내고 생각에 잠기자니, 삶이란 말을 두고서 나는 어디로 가는가를 되물어 보면서, 젊음을 도전이란 색으로만 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를 생각한다.


#내_나이_육십하고_하나일때_병원에_잘_누워_있기_위해_사는_삶.

이장희 가수님은 이십대에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때 라는 노래를 부르셨다. 노래는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나이 군상을 돌아보는 가삿말을 담고있다.


지난 가을 슬로푸드 창시자인 페트리니는 휴대폰에 적지 않은 돈을 쓰면서 좋은 야채를 위해 돈을 쓰는 것을 아까워 하는 일에 대해 꼬집었었다. 건강하고 즐거운 삶을 바라지만, 돈을 벌기위해 오늘을 마감하는 샷다를 내리는 일에만 몰두한다. 건강은 약으로 대신한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말라면서 절세하고 적금을 들며 월급을 세는 일. 오늘을 위해 잘 꾸리는 삶처럼 보이지만, 이런 일은 내 나이 육십 하고 하나 일때 병원에 갈 걱정을 덜거나 미래에 어떤 일에 대한 두려움을 맞서기위해서이다.


오늘 하루 한 끼가 미칠 영향은 내일 걱정으로 미룬다. 내일 여타의 걱정을 위해 오늘을 살지만, 정작 오늘 내가 했던 일들, 들었던 음악, 보았던 그림, 만졌던 그것이 이룰 내일은 더 내일로 미룬다. 


토익 시험을 위해 매일 영단어 세개씩 밑줄 긋지만, 뒤쳐지지 않기위해 정치기사는 꼬박 챙겨보지만, 그렇게 작은 것들이 미래의 나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며 살지만,


#정작 그 근본인 자신의 것. 그 자신에대해서는 소홀하다.

내가 지금 이리 한가하게 들판을 달려야할까? 돌아가자.

내가 지금 이리 한가하게 책을 펼쳐야할까? 돌아가자.

내가 지금 이리 한가하게 밥을 먹어야할까? 돌아가자.

내가 지금 이리 한가하게 하늘을 보아도 될까? 돌아가자.


말은 돌아가자고 하는데, 그 것은 거리를 천천히 두고 바라보며 가는 길이 아니라. 더 빠르고 좀 더 오늘에 치인 공간을 말한다. 사무실 책상이라던지, 미뤄두었다는 마음에 깜박한 발표자료라던지,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기위해 주말에 투잡을 뛰는 일이다.


그만 돌아가자. 인생은 직진. 지금의 두 걸음이 놓을 괘적. 

발을 곱게 씯는 일분. 신발을 가만히 바라볼 일분. 걸어 온 길을 마주하는 일분. 그 음악을 반복해서 드는 십분. 밥을 곱씩어볼 삼십분.


#그만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