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둘밥다반사/서툴러도 괜찮아

귀농통문 가을호에 둘밥이 소개 되었어요 : 걷다보면 알게되고, 행하다보면 깨닫게 된다더라

 

 



[걷다보면 알게되고, 행하다보면 깨닫게 된다더라]

가자. 자식이를 두고, 참으로 오랜만에 개운산을 넘어 집으로 간다. 밤 길. 컴컴하고, 오늘은 달빛도 적어, 딛는 걸음마다 조심스럽다. 잘 가고 있는 것일까? 두 다리의 속도는 적당한 걸까? 잘 보이는 것이 없으니, 다른 감각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지나는 방향 뒷 숲에서 우는 밤새, 낮에는 몰랐던 숲 냄새. 나는 걷고 있고, 발은 움직이고, 숨은 깊다

눈을 가만히 감아보자. 걷는 걸음이 더 조심스러워지겠지만, 여타의 감각으로 나는 숨을 좀 더 잘 쉴 수 있다. 3. 햇수로 삼 년. 둘러앉은밥상이 시작 된지 삼 년이 지났다. 3년 동안 4명의 친구들이 둘밥을 다녀갔고, 미련인지 자신감인지 나의 둘밥은 아직 진행 중이다. 처음 둘러앉은밥상을 시작하고자 마음먹은 것은 무엇보다 내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직장 생활 십 년 그리고 이십 년. 그렇게 해를 보내고 찾을 일은 창업. 모아둔 돈이 조금 있다 싶으면, 카페. 부족하다 싶으면, 치킨배달. 그렇게 그려졌다. 쳇 바퀴로의 쓸모가 덜해질 때, 나를 마주하러 나왔노라 외치긴 싫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삶에 대한 질문이 줄어들기보다 점점 늘어났고, 그 질문들의 상당 수는 시간이 갈수록 세세하거나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뭉퉁하고, 추상적이었다. 무엇을 향해 살 것인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살면서 꼭 무엇을 향해야 할까?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 걱정. 고민 속에서 삶의 궤적을 좇았다.

 

스무살 무전여행. 모두가 대학의 문틈으로 들어가던 그 시기. 달리는 폐달에 몸을 싣고, 전국 여행을 떠났다. 한 달간의 여행은 이런 문장을 남겼다. "혼자만은 살 수 없다. 사람은 개인으로 만들어지고 관계로서 완성된다". 교복을 입는 중학생이 되고서 부터, 코엑스로, 우체국으로, 청량리 밥퍼로, 프란체스코회관으로, 목마른 강아지 마냥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까 늘 궁리하고 좇아다녔다. 얽메고 옥죈다고 생각이 들었던 틀같은 학교.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여행을 떠났다. 눈보라 속 서른날의 무전여행. 그때 여행이 남긴 것이 무엇이다라고 생각을 하였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오늘 그 날들을 생각하니, 그 시간은 사람을 만나는 것 어떤 것이고 왜 중요한지 일러주었다. 그렇게 여행에서 돌아온 후, 봉사활동 모임을 만들었다.

구로종합사회복지관에서 운영되고 있는 방과후교실과 성북동 성가정입양원에서 봉사를 시작하였다. 전방 200m 내의 가정이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구로 판자촌. 아이들은 복지관에 와서야 저녁을 때울 수 있었고, 모두들 학원으로 향하는 시간에 혼자 방에 남거나 거리에 남아 방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방과 후 교실을 다니기 위해서 필요한 돈 5,5000. 생활보호대상자가 되면 50% 감면을 받아 27,500원이면 저녁을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생활보호대상자가되는 일도, 27,500원을 마련하는 일도 아이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모았다. 같이 봉사를 할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을 후원해 줄 사람들.

"아이에게 후원해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아이들의 인적사항을 일일이 알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봉사에 참여하셔서 아이들을 마주하실 수는 있습니다."

당돌한 말투. 자신있는 눈 빛. 두 가지는 자신 있었다. 무엇보다 당당했고, 뿌듯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무살이라고 말을 한다면, 사람들이 신뢰해주지 않을 것 같은 마음. 나이를 어떻게해야하나. 대학을 다니지 않는 고졸 직장인의 말을 누가 들어 줄 것인가? 그래. 군대. 군대에 다녀 온 나이면, 신뢰해 줄 것이다.

"스물다섯 입니다." 망설임 없는 거짓말. 그렇게 사람들을 모았고, 기획서 한 장도 없이 소개서 한 장도 없이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그렇게 돈을 모았고, 아이들을 만났다. 그러던 사이 아이들이 월요일 마다 학교를 가게 되는 일을 매우 거북스러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복지관 앞 도로. 이 도로는 새로 건축되는 아파트촌과 복지관 뒤 판자촌을 긋는 선 같은 곳이다. 도로를 두고 마주선 집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 같은 학교를 다녔고, 주말마다 집에 있어야 했던 아이들은 학교에서 별다른 말을 할꺼리가 없었으리라.

보름. 한 달에 두 번. 아이들과 영화를 보았다. 등산을 다녀왔고, 연극을 보았다. 방송국을 견학가고, 눈썰매장에 갔다. 때로는 상을 치르는 일 같은 급전이 필요한 아이의 가정 일을 함께 했다. 그렇게 소풍을돕는사람들 이란 모임이 만들어졌고, 십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다. 지금 나는 그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 꼭 한 번은 가서 인사하고 싶다는 마음을 늘 품고 있지만 쉽지가 않다. 어렵다.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한다며, 일을 하고 모임을 꾸려 살던 날. 늘 사고만 치던 동생은 내게 이런 말을 하였다. "형은 늘 바쁜 사람이잖아" 늘 바쁜 사람. 같이 살아야한다며, 함께여야한다고 외치고 살았지만 정작 집안은, 하나 뿐인 동생은 지키지 못했다. 어찌보면 내 몸뚱아리 조차 챙기지 못하고 있었다. 하여 모든 일을 그만 두었고, 나는 착실한 학생 그리고 착실한 형 또 직장인으로 살아갔다.

영화를 트는 일 보다 보는 것을 좋아했던 영사기사, 임원보다 아르바이트생 챙기다가 때려친 이벤트진행팀장, 보안기기설비팀, 영어교육출판사 자재과, 열씸청년으로 이름날리던 민속주점 메니저, 이벤트회사 고객관리, 보험, 용접기사, 물면 놓치지 않았던 영업사원, 나름 친절했던 콜센터 교육. 그리고 결핍이었는지 채웠던 경영학사, 경제학사, 국어국문학사, 문예창작전문학사 그렇게 4개의 학위. 그렇게 이십대를 살아왔다. 여유가 조금만 생겨도 자전거에 몸을 싣고, 동해일주, 국토 횡단, 종단, 지리산 종주,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경상도 할 것 없이 전국을 쏘다녔다.

스스로 젊다고 말하는 게 어색해지는 나이 서른. 선택해야 했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경험에 목마른 짐승처럼 보낸 삶. 여행에 모든 것을 푸는 듯 돌아다니던 삶. 그 궤적은 시골과 사람, 농촌과 먹을거리로 이어졌다.



 

귀농통문 구매 http://www.refarm.org/

늘 한 번은 돌아가 봐야지 했던 철원. 자전거를 타고 말고개를 넘었다. 장마철. 그친 줄 알았던 비는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비 탈길에 헛 도는 자전거 바퀴. 내려서 핸들을 잡고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지나는 트럭에 손을 몇 번 흔들어 보았지만 아무도 반응이 없다. 얼마지나 뜬금 없이 앞에 선 트럭, 그리고 열린 창으로 들리는 한마디. “야 타

젖은 몸. 종일 굶은 허기. 그래 빨리 타자. 여행하는 학생임을 밝히고 그동안 왔던 길과 앞으로의 일정을 말씀드렸다. 대뜸 운전 하시던 선생님께서, “비도 오는데 자고 가.” 강원도 산골에서 낯선 청년을 태운 그 분도 무서우셨을 텐데, 막상 그집에 자고 가라고 하시는 그 분이 저는 조금 무서웠다. 워낙 흉흉한 세상이니 오지랖으로 버틴 삶이라지만, 선뜻 네 알겠습니다 라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고민하며 눈치 살피는 모습을 보셨는지. 삼 년 전 쯤에, 길에서 저 같은 청년을 태웠는데 지체장애가 있으신 분이셨고 세 달 동안 자신의 집에 기거하며 같이 사셨다고, 세 달 후에 본 집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여 걸었더니 그 청년의 동생이 인천에서 달려와 데려가며 몇 번이나 감사하다는 말을 해주었다고, 헌데 오늘 길에서 저를 보고선 그날이 생각나 태우신거라며 초조해 하는 깍쟁이 서울 총각을 아침 시켜주셨다.

 

왠지 그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었고 어떤 삶을 사실지 궁금도 하였따. 하여 선생님 댁으로 갔다. 보통 시골이 그렇지만, 본인의 친 조카도 아닌데, 서울서 왔다며 동네를 돌면서 인사시키는 수고. 이 집에서 옥수수를 얻어 먹고, 그 앞 집에서 옥수수와 감자를 얻어 먹고, 그 옆집에서 또 옥수수를 먹고서야 다시 아저씨 집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아주머니가 내어주신 머슴 고봉밥. 일년치 먹을 옥수수와 삼일은 배부를 것 같은 고봉밥. ? 나는 지불할 돈도 없고, 그 동안 안면이 있던 것도 아니며, 누군가가 나를 부탁하지도 않았을 텐데, 종교적 사명이 있어 보이시지도 않는데, 도대체 왜? 그때도 잘 몰랐던 것 같다. 같이 산다는 것. 한 시대를 같이 사는 삶들이 만나는 일이 얼마나 반갑고 귀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저녁도 얻어 먹었겠다. 공짜로 잘 수는 없다 싶어, 도와 드릴 일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편히 자라는 몇 주 놀다 가라는 아주머니와 아저씨. 그래도 돕고 싶다 말씀드렸더니, 애호박 포장하는 일을 도와 주겠냐 물으셨다.

- 애호박을 열 개들이 한박스를 포장하다가 문득

- “어머니, 애호박 이거 얼마에 넘기세요?”

- “한 박스에 2,500원에 와서 차로 가져가

- 저는 자취 생활 십이년 차. 세탁조를 청소하는 남자였던 한민성. 애호박은 7년전이나 지금이나 한 개에 약 1,700. 비쌀 땐 2500, 마트가 오픈하면 가격이 많이 싼 곳은 900. 만약 2500원을 기준으로 보면, 한 개에 250원 이니까 시중가에 10%가 안 되는 가격이었다. 터무니 없구나 생각하던 차에 놓친 한 가지. 애호박을 담는 박스 값 1300. 1300원을 빼면 개당 가격은 120원이 된다.

 

화천 파로호 농가에서 만났던 오음리 선생님. 더 신선하고 맛있는데도 불구하고, 더 헐 값에 내 놓고 있었다. 기존 대형 유통에 모든 기를 휘둘리는 상태. 현제의 농산물 유통구조는 보통 7단계. 여기에 밭떼기가 한 번 들어가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며, 경매가 3번 정도 치뤄진다. 경매라 생각하면 매우 합리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수십년 동안 반복된 같은 집단의 생리에 합리성을 기대하는 일은 적합하지 못하다. 이런 복잡한 다난한 유통 구조 속에서 여수에서 팔리는 순천의 감의 상당수는 서울 가락동농수산물 시장을 왔다가 다시 여수로 내려와 팔리고 있다. 전국일주 하는 감.

분명 도로 인프라가 부족하고, 유통력이 부족했던 시대에는 가격을 결정해줄 중앙타워와 물류를 적절히 배분해줄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하나로 밥을 짓는 이 시대에선 이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좀 더 다양한 유통체널의 확보가 필요하다.

모두가 같은 유통에 의지하며 한 해의 농사 성패를 아홉시 뉴스 한 마디에 기댈 수는 없는 일이다. 기존 유통 농산물 시장을 당장 변혁하거나 깨부시고 새로운 것을 찾는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유통은 각자의 위치에 따라 각기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송두리째 외면한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루트를 개척하고 실험 일이 중요하다. 절대적으로 옳은 방법 하나를 모두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더 다양한 해답이 논의 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 주는 일이 중요하다.

지금은 하나를 성공 시키는 것만큼 다양한 시도가 중요한 시기이다. 강소농이라는 이름으로 농민에게 마케팅도 하고 생산도하고, 고객관리도하고, 영업을 하라고 한다. 이 안에서 사진도 찍고 브랜드도 만들고, 국문학과 졸업생들도 진로를 못찾는 스토리 텔러가 되라한다. 물론 각자의 농민을 경영주체라 보았을 때, 이 모든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아야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이러한 교육과 정책은, 저기 저 잘하는 000이 있고, 국가가 돈으로 교육과 지원을 해주는데 왜 못하는가? 그것은 당신(농민)의 잘 못 아닌가? 하고 묻는 일과 같다.

돈으로 책임을 전가시키는 일이다.

벤체센터에서 아무리 자영업자를 백날 교육해도 모두가 스티브잡스가 될 수 없듯이, 이들이 활약하고 뛸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둘러앉은밥상은 사람들은 당장 중요하지 않다고, 또는 돈이 너무 많이 든다거나, 수익에 비해 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이러한 일들을 한다. 혹자는 느려터진 둘밥이 답답하기도 하다 외쳐도, 한 달에 한 마리 적토우를 잡고, 한 병을 적립했다가 나누는 단호박 푸드저스티스 운동을 실천하고, 매실을 노랗고, 과일은 익은 것을 먹어야한다며 외치는이유이다. 물러 터질수 있다 설명하고 완숙 무화과를 판매하는 이유이다.

한 달에 한 마리 적토우를 판매하는 일은 몇 년을 고민한 일이다. 수년을 먼저 시작한 유기농 전문 쇼핑몰에서 포기하였고, 대형레시피 콘텐츠회사에서 시도하였다가 접었다. 너무 생소한 분야이고, 너무 많은 부위가 두려움을 주었다. 아이들이유식 판매를 위해 고기 다지는 일을 위해 기계를 알아보는 것도 어려운 작업이었다. 축협에 맡기면 될 일 이란 것도 몰랐다. 머릿속으로 걱정이 걱정을 만들고 두려움이 두려움을 만들었다. 4년 전 소고기 파동 때, 계약했던 백화점들은 정기적이고 대량 상품이 아니면 어렵다는 말을 전했다. 호텔에서는 특수 부위만 전량 매입을 원했다. 인터넷이 가장 적합한 판매처였지만, 가격탄력도가 그 어느 시장보다 높은 인터넷에서 판매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한 달에 한 마리 한우를 소비하는 일은 이미 많은 단체에서 시도했었지만, 매번 실패 했고, 비인기 부위 처리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서는 지속성이 어려운 일이었다. 고민을 토로했던 선배들과 술자리에서 얻는 말이라고는 시장이 없는 상품은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

그래서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았다. 첫째로 다른 곳에 전혀 팔 곳이 없었다. 둘째로 시도할만한 곳은 다해봤다. 셋째로 유기농 축산이 살아야 농업이 산다는 믿음이 있었다. 넷째로 판매가 되야 생산이 되고, 지역 한쪽에서는 유기축산을 또 한 측에서는 유기농업을 시행하는 순환체계를 만들고 싶다는 한창본 농부님의 말씀에 적극 동조했다. 다섯 째로 이런 일을 하려고 만든 곳이 둘러앉은밥상이었다.

여섯째로 시작 부터 한 번은 꼭 시도해보고 싶은일이었다. 일곱째로 가격접근성을 보완할 수 있다면, 지역 접근성을 배제시킬 수 있는 온라인이 가장 적합한 판매 시장이었다.

유통업자가 만든 먹을거리 환상. 마블링이 맛있다는 말. 음료수 이름처럼 매실은 초록색이어야 건강하다는 이야기. 마트에 전시된 싱거운 무화과. 우리는 누구의 편의를 위해 진실을 외면하도록 길들여졌다. 머릿속으로 판단하기도 전에 판단을 강요당한다. 매끄러운 것이 이쁜 것이다. 모양이 고르지 않은 것은 건강하지 않은 것이다. 라는 말이 정말 나의 기호인지부터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다수의 선택으로 나의 기호는 이미 정해져있었다. 그리고 그 다수의 기호는 다량의 힘을 가진 이들이 만들었다. 한우 소비 촉진 광고에서는 GMO 사료 이야기는 언급하지않는다. 보여 줄 것만 보여주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 몸을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은 일이란 것을 해야겠다 마음 먹었다. 사회적기업을 선택한 이유도 온몸을 까발리게 되더라도 부끄럼이 없이 나를 보일 수 있고, 당당할 수 있으며, 자신있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우린 적토우를 매달 한 마리씩 판매하고 있다. 어려움이 없지는 않지만, 실수가 없는 것도 아니고, 불만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반복구매는 늘어나고 있고, 감사한 분들과 함께하는 마음은 쌓이고 있다.

같은 집에 상품을 두번 보낸 일도 있고, 신경 쓴다고 등심을 시킨 집에 더 비싼 갈비살을 보낸 일도 있다. 더운날 택배 박스 깨먹고 문에 던지고 간 택배회사 직원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건 일도 아니었다.

매달 완판을 하기위해서는 이른바 "자주 찾는 분들"300분 정도 필요하다. 석 달에 한 번은 구매해야할 이 분들을 모으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른바 명품 전략으로 예약접수만 받고 추가 주문은 받지 않는 일은 접수 외에 남은 물량을 처리할 방법이 불명확하기 때문에 안된다. 그리고 가격을 차등 주는 일도, 고객과 생산자가 가족처럼 연락하고 서로를 걱정하는 형태를 만들려는 지금의 상황과 계획에 맞지 않아 어렵다.

어찌되었건, 첫달 완판, 둘째달 80% 판매. 적토우는 그렇게 매달 둘밥에서 판매되고 있다. 우리는 둘러앉은밥상에서 살아가고 있고, 참 고맙고 감사한 이야기들과 분들을 접한다. 감사하다. 둘밥은 같이 하는 분들을 매우 귀찮게 한다. 주문을 받는 싸이트는 아직도 개편 중이고, 주문 받을 적마다 둘밥에게 한마디를 남겨달라고 하고, 소통하고자 한다. 글의 마지막으로 그 분들의 말을 전하고 싶다.

어찌되었건 나는 오늘도 사무실에 나와 있고, 주말에도 즐겁게 사무실과 도로에서 또

농촌에서 놀고 있다. 둘밥은 실은 나도 아니며, 사무실에서 일하는 친구의 것도 아니다.

 

바로 우리가 둘밥이다.

 

그렇게

바로 당신이 둘밥입니다.



사람 사는 삶이라는 것이 늘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고 지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친정집 앞마당이며 엄마의 텃밭이며 하는 시골 풍경이 위로가 됩니다.

그래서 도시에 사는 저는 둘밥과 같은 곳을 보면 반갑고 기운나고 마음이 좋고도 좋습니다. 친정 부모님 드릴 사과 주문하니 부자된 기분입니다. 이런 고객이 많으실테니 둘밥사장님은 이미 큰 부자이십니다.

의성이네유기농 사과를주문하며

이유미선생님

대표님!!! 꼬꼬마 사과 너무 맛있어요 계속계속 팔아주세요 ㅋㅋㅋㅋㅋ 단호박도 좋고요 지리산 산나물도 짱!!!

둘밥팬 박선민 드림

내가먹는 먹거리에대한 생산자와 자연에대한 감사한마음을 저와 먹일 가족과 나눌수있게해준 둘밥에 감사드립니다 주위의 많은분들께 좋은 먹거리 이런 좋은일하시는 둘밥 많이 홍보할께요 홧팅입니다 감사합니다 - 김성은 선생님

안녕하세요!

 

지난 주에 건강한 적토우, 신선한 상추 그리고 탱글탱글한 고대미까지, 잘 받았습니다!

 

최근에 취업을 해서, 부모님께 좋은 어버이날 선물을 해드리고 싶었는데 마침 적토우를 알게 되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또 그 동안 저를 아껴주셨던 남자친구 부모님께도 선물을 해드리고 싶었는데, 아주 좋은 선물을 드릴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아무래도 어른들은 (물질적으로는)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다 갖고 계시니 마땅히 마음에 쏙 들어하실 선물을 찾기가 어려웠는데,

단순히 '한우 선물'이 아니라 '적토우'라서 더 의미를 되새기며 받아주셨던 것 같습니다.

특히 아삭아삭한 상추 포기(!)까지 같이 배송되어서 좋아하셨고요.:)

 

(선물을 보내드리는 제 입장에서도, 이런 센스있는(!) 선물을 찾아서 솔직히 조금 제 자신이 자랑스러웠습니다ㅋㅋㅋㅋ)

 

감사한 마음 가득 담아서, 인증샷(!) 보내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모든 일 잘 되시길 기원합니다!

페북으로 항상 둘밥을 지켜보고(!) 응원하겠습니다.:)

 

송 올림